호주 시드니 북쪽 낡은 오두막집, 외로운 반려인들과 버려진 반려견의 10년 살이 사랑 이야기
어릴 때 만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곁을 지킨 시베리안 허스키 스노우.
녀석과 나눈 사랑을 통해서 세상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깊고 넓어지는 반려인들.
이 이야기는 호주 시드니 북쪽 바닷가 근처 낡은 오두막집에서 시작됩니다.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호주로 날아간 작가. 어느 날 어느 곳에도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던 큰아들이 스노우를 데리고 옵니다.
스노우는 시베리안 허스키로 스노우 역시도 이전 주인들에게 몇 번의 버림을 받았던 아픔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외로운 반려인들과 버려진 반려견의 함께하는 삶이 시작됩니다.
작가는 호주로 이주한 후 겪는 외로움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스노우와의 만남이 자신과 두 아들에게 가져다 준 변화와 치유의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냅니다.
꼭지 1 ‘왔노라, 살았노라, 사랑했노라!’는 반려견 스노우가 식구들의 집에 처음 와서 서로 적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스노우의 시각으로 보여줍니다.
꼭지 2 ‘그해 8월, 나는 무엇을 했나?’는 늙은 스노우가 암의 고통과 치열하게 싸우던 8월, 한 달의 마지막 시간들을 스노우의 일기 형식으로 말합니다.
꼭지 3 ‘남겨진 반려인, 텅 빈 앞마당’은 식구들도 자신들이 스노우에게 반려인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시간을 그립니다. 스노우의 안락사를 결정한 후부터 스노우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가고 한 달이 지난 후 식구들이 감당해야 했던 복잡한 느낌과 새롭게 눈을 뜨는 사실들을 식구들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한결같이 그 자리에 머물면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지켜줬던 스노우의 이야기에서 ‘사랑이 무엇인가?’ 그 의미를 다시금 느끼신다면 좋겠습니다.
책 속에서
나는 시베리안 허스키 순종이다. 날렵한 허리에 쭉 뻗은 뒷다리, 단단한 앞다리. 뾰족한 삼각형 귀. 윤기 나는 검은 털들로 뒤덮인 다부진 몸통. 송곳처럼 날카롭고 솟은 이빨들. 눈부시게 하얀 털의 얼굴. 뒤로 잘 넘어가는 부드럽고 탐스러운 꼬리.
화룡정점은 눈 색깔이다. 오드아이즈. 짝짝이 눈. 오른쪽 눈동자는 검은색으로 차갑고 냉정해 보이고, 왼쪽 눈동자는 짙은 붉은 갈색으로 지옥불처럼 타올랐다. 엄마는 눈 색깔이 짝짝이인 개를 처음 보았다. 혹시 어디 아픈 유전병을 앓는 것 아닌가 슬그머니 걱정을 하였다.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면 나를 전 주인에게 도로 갖다 줄 것인지 형들 눈치만 보았다. 근데 형들은 내 짝짝이 눈을 보고 난리다. 개성 있게 멋있다고!
_ 꼭지1 '오두막집에서의 첫날 밤' 중에서 (스노우의 시각에서 쓴 글)
아무것도 잘 먹지 않는 나를 위해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내 입속에 엄마는 뭐든 다 집어넣었다. 두 형들이 기겁을 하고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형들이 집에 없으면 엄마는 완전 막무가내였다.
콩나물, 두부, 배추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노란 무, 어묵, 새우젓 등등 식사 준비하면서 사용되는 음식 재료는 모두 하나씩 내 입속으로 들어갔다. 무식하게 한식이든 양식이든 가리지 않았다.
나는 계속 뱉어내면서도 엄마가 부엌에서 음식 준비를 하면 그 주변을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_ 꼭지1 '상상하지도 못했던 커다란 걱정거리' 중에서 (스노우의 시각에서 쓴 글)
오늘은 병원 가는 날.
작은형 차로 갔어.
내가 혼자 타지 못해 큰형이 나를 안고 뒷좌석에 앉았어.
형 얼굴에 내 코끝을 비비면서 킁킁거려도 큰형은 그냥 웃기만 해.
열심히 핥아도 얼굴을 피하지 않아.
작은형이 운전하며 말했어.
“큰형은 우리 식구한테만 웃어.
방송국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절대 안 웃으면서.
참 희한한 사람이야.”
_ 꼭지2 '8월 14일: 나, 정말 괜찮아' 중에서 (스노우의 시각에서 쓴 글)
지은이는 누구?
지은이 이름은 박까리. 서울 토박이다. 시골의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을 나이 들수록 참 부러워한다. 그들에게 돌아갈 고향이 있어 보이니까.
그녀는 삶의 씨를 제대로 뿌려야만 하는 귀중한 젊은 날들을 객기로 모두 날렸다고 한탄하며 살았다. 구멍 숭숭 뚫린 시간조각들을 주워 모으면서 얼마나 많은 자책과 후회를 하였던가? 뒤늦게 철이 들면서 아직 오지 않은 내일들이 지나간 수많은 어제보다 훨씬 더 귀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객기로 버려진 시간들이 글을 쓰게 해 주는 그녀만의 사투리가 되고 고향이 될 줄이야.
그녀는 결혼 후 식구들과 함께 지구 남반부에 위치한 호주라는 섬대륙으로 날아갔다. 시드니 노스쇼어에 터를 잡고 20년 남짓 살았다. 타국이기에 피할 수 없는 지독한 외로움과 불분명한 정체성에 부딪치면서 전쟁같은 세월을 보냈다. 40살 넘어 별 볼 일 없는 나이에 그곳 대학에서 유아교육학과를 공부하고 바닷가 근처 동네에 아담하고 정겨운 어린이집을 열었다.
뒤죽박죽, 좌충우돌 부수어진 삶의 돌멩이들을 모퉁이 머릿돌로 쌓게 해 준 소중한 몇몇 인연들을 그녀는 호주에서 만났다. 반려견 스노우가 그 인연들 중의 하나로 그녀 삶 속에 들어왔다. 그것은 실로 커다란 행운이었다. 식구들이 끝 모를 터널 안에서 빛을 못 찾고 허둥댈 때 스노우는 살아갈 방향을 잡아 주고 앞으로 같이 걸어가 주었다. 아주 단순하게. 그냥 그 자리에 머물면서 귀를 열어 들어주고 묵묵히 곁을 지켜주기만 했을 뿐인데.
먼 시간 지나 그녀는 다시 한국으로 왔다. 눈 돌아가게 급변하는 한국에 적응하기란 타국에서 사는 것만큼 녹록지 않았다. 오래 떠나 있던 한국의 빈자리는 물과 기름처럼 그녀를 겉돌게 만들었다. 호주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스노우가 자꾸 생각났다. 그럴 적마다 녀석과 같이 지낸 시간들이 연기처럼 흩어질 것 같아 안타까웠다. 조금이라도 선명한 기억이 남아 있을 때 따뜻했던 스노우와의 시간을 정리하고자 마음먹었다.
신에게 사랑이 있음을 그녀는 굳게 믿는다. 신의 사랑은 사람이 지독하게 외로웠을 때 선택한 잘못된 길을 선한 방향으로 돌아가도록 이끈다. 바로 반려견 스노우가 그 사랑의 실체였음을 이 글을 통해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스노우는 그녀에게 구수한 사투리로,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의 길을 찾아 주었다.